케케케딴짓하자딴짓


아아아아아아악
깁슨 레스포오오오오오오오오옹옹오오ㅗ오ㅗ오ㅗ올
랜디 로즈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ㅡ응으ㅡ으으으응으ㅡ


아 간만에 콩궈먹듯 슥삭슥삭 그렸는데
스캐너도 없고 타블렛도 뗐고
디카로 찍어갔고는 라인 도저히 못따겠다;;;

by darkTOX | 2011/05/31 03:09 | Scrach | 트랙백 | 덧글(1)

우리 아부지

0.
우리 아버지 얘긴데

1.
그러니까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한나라당 경상도 앞마당에서 한평생을 보내셨으며
박정희를 가장 존경하시며
수십년째 동아일보만 보시다가 몇 년 전에 조선일보로 바꾸신 분이시며
암튼 짐작하면 짐작가는, 딱 그런 정치관, 사회관의 소유자 되시겠다.

뭐, 어디 출마한 적은 없으시고, 그런거 드럽다고 보시는 분이시라
어느 당을 지지하면 통장에 뭐라도 들어오는 입장도 아니고
정말 진심이 그거이신 그런 분이시다. 

이게 머 울 아부지 탓도 아니고, 지방 어르신들의 커뮤니티라는게 원래 그렇다. 
같은 국경 안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해서 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2.
울 아부지가 연세가 드시면서,
그러면 내 60평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머 그런 생각을 슬쩍 비치셨던 적이 있으시다.
세상은 나를 제껴두고 앞서서 후다닥 변해 가고
살 날이 살아온 날들보다 짧아진 지도 벌써 옛날이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죽어도 이어질, 남겨질 것이 뭐가 있을까...
...그런거.
참고로 대장암 수술 하시기 한참 전 얘기다.

2-1.
유교적 가치관에 부쩍 눈이 가셨던 것 같다.
한 번은 전의 이가 종갓집 - 그러니까 우리 큰집 말고 진짜 충청도 전의에 있는 거기 - 가보자고 하셨다.
이렇게 얘기하면 우리 아부지가 되게 무슨 곰방대 물고 다니는 옛날 할아버지같은 인상을 주겠지만
사실 별로 그런 분은 아니셨다.
나 크면서도 문중이나 뭐 그런거에 관한한 딱히 의식해 본 역사도 없고...
암튼 거기 전의 이가 종가에서, 일년에 한 번 지낸다는 무슨 제사가 있었던 거 같다.
가기야 온 가족이 같이 갔지만, 특히 아들인 내가 가는 게 의미가 있었던 거겠지.
전두환 때 뭐 한자리 하던 퇴물 하나가 문중 조직에서 뭐 한자리 한다고 했다. 그사람이 축문 읽드라.

하지만 요즘세상에 족보 뒤비적 거리는 데 관심 있는 건 노인들 밖에 더 있나. 거기 와 있는 사람들도 다들 노인이신 분들 뿐이더라, 심지어 울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암튼
용도폐기되어버린 유교의 찌끄레기에서 큰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하나 뿐인 울아부지 아들내미 놈은 그런 생각이나 했다...

2-2.
한 번은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친척 어르신들께 납골당을 제안했던 적이 있다.
내가 애기적에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라 부르던 분들은, 실은 울아버지 사촌분들이시라 나한테는 5촌 아제들,
그 자녀들은 나랑 6촌형님네들이다. 내가 애를 낳아서 한 대씩만 더 내려가면 8촌...

멀다. 이대로 동현이가 취직하고, 21대손들이 각자 삶에 바빠지면 정말 남이 되어 버린다....
벌초라든지 성묘 핑계로 일 년에 한 두 번이라도 얼굴 볼 계기가 필요하다...
죽어 뭍힌 당신께서 당신 무덤 보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후손들을 위해 필요하다...
소풍 오듯 휴가 오듯, 모임이 재미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임은 잘 되게 마련이다...
그래야 문중이 이어진다...

...라고 생각하셨었던건데,
총대 메는 사람도 없고. 다른 어른들도 심드렁들 하시고.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하나 뿐인 울아부지 아들내미 놈은,
결국 '문중'개념이 소멸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오래전에 굳힌 놈이었다...
덧붙여,
아부지께서 옳은 주장을 하셨다 + 우리 탓이 아닌 이유로 무산되었다 =  더할나위 없는 최상의 결과
라고, 그렇게 계산기를 두들겼다. 아울러 내가 총대 멜 군번이 아니었다는 점도.

3.
아버지가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의식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아버지는 한자를 정말로 많이 아신다.
그 시대 어른들이 많이들 그렇듯이, 우리 아버지도 정규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하셨다.
한자는 혼자서 익히신 것들이다.
훌륭하시지만,
그치만 나는 한자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배울 생각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사라져 없어져야 할 문화라고, 따라서 일부러라도 배우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내 아버지께 소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요가 없어지는 학문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하나뿐이 아부지 아들내미 놈은 아버지 듣기 좋으시라고 빈말을 하지조차 않았다.

4.
확실히 나는 아버지 아들이 맞긴 맞는가 보다.
딴건 몰라도 정치관이나 세계관에 관한 한
입증해 보이기 전에는 (부모님/자식놈) 의견이라고 해서 본인의 주장을 굽히거나 듣기 좋은 빈말을 않는다.
차라리 남이라면 그랬을 지언정.
확실히 나는 아버지 아들이 맞긴 맞다.

5.
우리 부모님 세대는, 손자를 보아야 본인의 인생이 완성 된다고,
'피'를 물려받은 자손을 통해 영원히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하시고,
거기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신다.
자녀가 부모의 뜻을 이어, 또하나의 당신이 되는 것에서 의미를 찾으신다.

나도 취직을 했고, 돈을 모았고, 결혼만 하면
우리 부모님은 이제 본인들의 건강만 돌보시며
남은 인생을 즐기실 일만 남아 있었다. 그랬었다.
우리 부모님으로 봐서는, 내가 취직하고 누나가 아이를 가졌던 그 해가
최고로 행복하셨던 한 해였을 터이다.

그치만 결국 나는 내 중뿔난 두뇌와 심장이 가는 대로 살기로 했고,
지금 다시 부모님의 행복했던 몇 해를 롤백시켜 버렸다.

6.
부모가 되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자연히 Little tox를 바랄 거 같긴 하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아도.

하지만 자식으로서의 나를 생각해 보건대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본인의 인생과 떼어놓지 못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식은 그냥 제 인생 제 좋을 대로 살려 한다.
그리고 반드시 제 멋대로 가게 되어 있다.
내 아이라면 더더욱 제 멋대로 가게 되어 있다.

내가 우리 아부지를 닯았듯이, tox의 아이는 tox를 닮았을 거고,
반드시 그러게 되어 있다.
지가 잘 난 줄 알고 살아야 살아지는 놈일 테니까.

6-1.
기왕 그렇게 될 거,
나는 애를 낳으면 방목할거다.
너 좋을 대로 살아라.
니가 내 뒤를 이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을 거다.
내가 나 좋을 대로 사는 모습이야말로, 너에게 물려 주고 싶은 유일한 모습이다.
나 좋을 대로 살아가는 것....이거 의외로 노력 많이 필요하다.

6-2.
한 사람이 사회에서 가지는 발언력에는 한계가 있고
지금 우리나라같이 세대간에 정치적 입장이 뚜렷이 갈라지는 상황에서는
각자 집에 가서 조선일보 끊게 하시는 것이
촛불을 드는 것 보다, 어쩌면 투표보다도 더 중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가 나 좋을 대로 사는 만큼
아버지는 당신께서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살아가실 자유가 있으신 거 아닌가?

내 아이도 열댓살만 되면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될 거고
지가 지 개똥철학 만들면서 거기 따라 살기 시작할텐데
그 때 나는 내 자식 세대의 시대정신을 따라 잡을 자신이 있나?
혀를 차지 않고 병존할 자신이 있나?
'다른' 것이 아니라 그건 정말 '틀린' 거라고 말하고 싶어 지면, 그 땐 어쩔꺼냐, 나?

아버지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살아가실 권리가 있으신거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가고 나니, 조선일보 좀 내다 버리라는 말씀 그렇게 쎄게는 못드리겠드라. 노무현 어쩌구 유언비어 퍼뜨리는 그 '이웃에 누구'라는 집구석이 어느 집구석인지는 정말 궁금하지만.

by darkTOX | 2011/05/25 20:32 | Lifluid | 트랙백 | 덧글(2)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self.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라.

존 F. 동현이 말씀.

by darkTOX | 2011/05/25 18:32 | Lifluid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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